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

 



[image]
'''Eintracht Frankfurt e.V.'''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 프라우엔

[image]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
'''Eintracht Frankfurt'''
'''정식 명칭'''
Eintracht Frankfurt e.V.
'''애칭'''
Die Adler (독수리군단)
SGE (Sportgemeinde Eintracht)
Launische Diva (변덕스러운 디바)
'''창단'''
1899년 3월 8일
'''소속 리그'''
'''분데스리가 (Bundesliga)'''
'''연고지'''
독일 헤센다름슈타트 현 프랑크푸르트암마인
(Frankfurt am Main, Hessen)
'''홈 구장'''
도이체 방크 파르크[1] (51,500명 수용)
(Deutsche Bank Park)
'''라이벌 구단'''
'''키커스 오펜바흐 - 마인더비'''
'''SV 다름슈타트 98 - 헤센더비'''
'''이사장'''
[image] 페터 피셔 (Peter Fischer)
'''단장'''
[image] 브루노 휘브너 (Bruno Hübner)[2]
[image] 프레디 보비치 (Fredi Bobic)
'''기술 고문'''
[image] 공석[3]
'''감독'''
[image] 아디 휘터 (Adi Hütter)
'''주장'''
[image] 하세베 마코토 (Makoto Hasebe)
'''부주장'''
[image] 마르틴 힌터에거 (Martin Hinteregger)
'''역대 한국인 선수'''
'''차범근''' (1979~1983)
심재원 (2001~2002)
차두리 (2003~2006)
'''공식 웹 사이트 및 소셜 미디어'''

'''한국 팬 사이트'''

'''지난 시즌 성적
(2019-20 시즌)
'''
분데스리가 9위
'''우승 기록'''
''''''
'''독일 챔피언십 (1부)'''
(1회)
1959
'''남부 독일 챔피언십 (1부)'''[4]
(2회)
1929–30, 1931–32
'''가우리가 쥐트베스트 (1부)'''[5]
(1회)
1938
'''오버리가 남부 (1부)'''[6]
(2회)
1952–53, 1958–59
'''2. 분데스리가 (2부)'''
(1회)
1997-98
'''DFB-포칼'''
(5회)
1973-74, 1974-75, 1980-81, 1987-88, 2017-18
'''UEFA 유로파 리그'''
(1회)
1979-80
'''UEFA 인터토토 컵'''
(1회)
1967
'''클럽 기록'''
'''최고 이적료 영입'''
[image] 마르틴 힌터에거 (Martin Hinteregger)
(2019-20, From FC 아우크스부르크, 약 900만 €)
[image] 지브릴 소우 (Djibril Sow)
(2019-20, From BSC 영 보이즈, 약 900만 €)
[image] 안드레 실바 (André Silva)
(2020-21, From AC 밀란, 약 900만 €)
'''최고 이적료 방출'''
[image] 루카 요비치 (Luka Jović)
(2019-20, To 레알 마드리드 CF, 약 6,000만 €)
'''최다 출장'''
[image] 카를하인츠 "챨리" 쾨르벨 (Karl-Heinz "Charly" Körbel) - 720경기[7] (1972-1991)
'''최다 득점'''
[image] 베른트 횔첸바인 (Bernd Hölzenbein) - 201골 (1967-1981)
'''분데스리가 득점왕
(4회)
'''
[image] 욘 안데르센 (Jørn Andersen)[8] - 18골 (1989-90)
[image] 안토니 예보아 (Anthony Yeboah) - 20골 (1992-93), 18골 (1993-94)[9]
[image] 알렉산더 마이어 (Alexander Meier) - 19골 (2014-15)
1. 개요
2. 역사
3. 역대 시즌
3.1. 2010-11 시즌
3.2. 2011-12 시즌
3.3. 2012-13 시즌
3.4. 2013-14 시즌
3.5. 2014-15 시즌
3.6. 2015-16 시즌
3.7. 2016-17 시즌
3.8. 2017-18 시즌
5. 라이벌 구단
6. 여담
7. 선수 명단
8. 둘러보기


1. 개요


독일 분데스리가의 클럽. 유럽의 관문도시인 프랑크푸르트를 연고로 하고 있는 클럽으로 많은 관중수를 자랑하는 클럽이다.
이 팀의 엠블렘에는 독수리가 그려져 있는데, 이는 프랑크푸르트 시의 문장에서 따온 것이다. 그래서 이 팀의 별명 역시 'Die Adler(독수리군단)'이다. 팀 내에 'Attila(아틸라)'라는 이름의 검은 독수리 마스코트 또한 존재한다(공식 홈페이지 내의 선수단 소개란에도 등재되어 있다). 팀 내 스폰 행사 등에 이 마스코트를 데려오는 경우가 가끔씩 있으며, 팀의 승리를 비는 의미로 선수에게 깃털을 뽑아서 주기도 한다. 다른 별명인 SGE는 팀의 옛 명칭이 그대로 남은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별명인 Launische Diva는 1990년대 강호에게는 승리를 챙기고, 약체에게는 승점을 내주는 의적과 같은 플레이 때문에 붙여진 별명이라고. 참고로 팀명의 아인트라흐트(Eintracht)는 영어의 United와 유사한 뜻이다. 영어식으로 하면 프랑크푸르트 유나이티드인 셈.

2. 역사


1899년에 생겨나 주 리그에서 챔피언에도 오르고, 동네의 이 팀 저 팀을 하나로 합치면서 규모를 조금씩 키웠다. 분데스리가 출범 전 독일 챔피언십 시절이던 1959년에 우승을 차지했다. 나름 지역의 강호였기 때문에 꾸준히 상위 부분 멤버로서 남았고, 특히 1959년 독일 챔피언십 우승팀 자격으로 출전한 1959-60 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 선전하면서 결승까지 올랐던 것이 매우 컸다. 결승에서 레알 마드리드와 만나 치열한 골 공방전을 벌였지만,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에게 3골, 페렌츠 푸스카스에게 4골을 얻어맞으면서 결국 3:7로 패한다. 챔피언스리그 초기의 최고 명승부로 꼽히는 경기인데, 승자는 아니었다. 어쨌든 이런 업적들로 인해 분데스리가 출범 당시 원년 멤버로 초대되었다.
분데스리가에서는 출범과 함께 33시즌 동안 강등당하지 않으면서 강호로 군림했다. 그러나 우승은 없고, 3위만 다섯 차례 기록한 것이 전부였다. DFB 포칼에서 4번 우승하면서 그래도 꾸준히 우승 트로피와는 인연을 맺었고, 1979-80 시즌에는 같은 독일 클럽인 VfL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를 누르고 UEFA 컵 우승에 성공한다. 이 당시 뛰었던 선수가 바로 '''차범근'''. 사실 프랑크푸르트가 한국인들에게 알려진 것도 차범근이 뛰었던 팀이라는 사실에 기인한다. 차범근은 이 팀에서 총 4시즌을 뛰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팀의 올타임 레전드 중 한명으로 꼽히고 있으며 2013년에 구단에서 발표한 역대 베스트 11에 당당히 꼽히는 등 아직도 식지 않는 인기를 보여준다.[10]
그 뒤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으면서 서서히 몰락, 1990년 접어들어 강등과 승격을 반복하는 클럽으로 위상이 바뀐다. 그래도 워낙 연고지가 크고, 경기장 시설도 훌륭하며, 팬들도 많기 때문에 발전 가능성은 있는 팀이다. 2000년대에도 두 번의 강등을 겪긴 했지만 금세 다시 분데스리가로 승격하였고, 2018년에 30년만의 DFB-포칼 우승과 더불어 그 다음 해 두 시즌 연속 유로파 리그에 진출하는 등 뛰어난 성과를 거두고 있다.
홈 구장인 도이체 방크 파르크는 2006 독일 월드컵에서 한국과 토고의 경기가 열린 곳이다. 1925년에 지어졌지만, 네 차례 리모델링을 거쳐 오늘날에도 잘 사용하고 있다. 독일에서 10번째로 큰 경기장이기도 하다.

3. 역대 시즌



3.1. 2010-11 시즌


10-11시즌엔 전반기에는 테오파니스 게카스가 14골을 넣으며 전반기 득점왕에 올랐고, 전반기 마지막 경기에서 1위 독주하던 도르트문트를 꺾는 등 중위권에 있었지만, 후반기 게카스가 부진에 빠지면서 득점 빈곤 현상이 일어났다. 후반기 시작한 뒤 8경기 연속으로 득점을 기록하지 못하며 순위도 중위권에서 강등 위기에 몰리기 시작했다. 결국 최하위 상파울리와의 경기에서 2-1 신승을 거둔 뒤, 미카엘 스키베 감독이 경질되고 크리스토퍼 다움을 소방수로 기용했지만, 팀의 반등을 이끌어내지 못하고 최종전에서 우승이 확정된 도르트문트 원정에서 3-1로 역전패를 당해 묀헨글라드바흐에 밀려 17위로 강등당했다. [11]

3.2. 2011-12 시즌


10-11시즌 17위로 강등당하며 2. 분데스리가에서 시즌을 시작하게 됐지만, 1시즌만에 아르민 페 감독 아래에서 SpVgg 그로이터 퓌르트에 이어 2부리그 2위로 다시 1부리그로 승격했다.

3.3. 2012-13 시즌


리그 6위로 유로파 리그 진출권을 따냈다. 13-14시즌 유로파리그에서 F조로 들어가서 지롱댕 보르도, 아포엘 FC, 마카비 텔아비브(이스라엘)와 맞붙게 되었는데 5승 1패로 조 1위를 기록, 32강에 진출했다. 32강에서 FC 포르투와 2-2, 3-3으로 2경기 모두 비겼으나 원정 다득점에서 앞선 포르투에게 밀려 탈락했다.

3.4. 2013-14 시즌


리그에서 32차전까지 9승 9무 14패로 리그 11위를 기록, 리그 잔류를 해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DFB-포칼에선 4강까지 올라갔으나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에게 0-1로 패하면서 유로파리그 진출권도 날려야 했다.

3.5. 2014-15 시즌


14-15 시즌은 아르민 페 감독이 슈투트가르트 감독이 된 가운데 토마스 샤프가 지휘봉을 잡았다. 리그 9위를 기록했고 알렉산더 마이어는 공격수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19골로 득점왕에 올랐다. 프랑크푸르트는 토마스 샤프의 성향 답게 닥공축구로 다득점-다실점을 기록하며 9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DFB-포칼은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에게 1-2로 지면서 32강에서 탈락. 10위 안으로 시즌을 마쳤음에도 토마스 샤프는 사임했다.

3.6. 2015-16 시즌


2010-11시즌 강등팀을 1년 만에 승격시키고 유로파리그로 이끌었던 아르민 페 감독이 돌아와서 아름다운 재회를 기대했다. 하지만 결과는 기대 이하였다. 4라운드까지 12골을 득점하고[그러나] 11라운드 바이에른 뮌헨에게 0-0으로 비기며 뮌헨에게 승점을 따낸 첫 번째 팀이 되기도 했으나 25라운드까지 5승 9무 11패로 강등권인 16위에 그치며 결국 2016년 3월 6일 아르민 페 감독은 경질되었다. 후임으로 크로아티아 대표팀을 이끌었던 니코 코바치가 새 감독이 되었다. 코바치는 첫 경기 묀헨글라드바흐 원정에서 0-3 패배로 자존심을 구겼으나, 두 번째 경기 꼴찌 하노버를 홈에서 1-0으로 잡으며 첫 승을 거두었다. 그러나 28, 29, 30라운드 뮌헨 원정 - 호펜하임 홈 - 레버쿠젠 원정에서 3연패를 당해 강등 직행 17위에 머물렀다. 15위 슈투트가르트와 승점 6점 차, 16위와 브레멘과 승점 4점 차. 다행히도 31라운드 마인츠와의 홈경기에서 한때 프랑크푸르트 소속의 슈테판 벨의 자책골로 2-1 역전승을 거두었고, 32라운드 헤센 주 지역라이벌 다름슈타트 원정에서도 2-1 역전승을 거두었다. 이 승리로 슈투트가르트를 17위로 내리고 16위에 오르는 데 성공했다. 33라운드 우승 희망이 있던 도르트문트를 홈에서 1-0으로 꺾으며 그들의 희망을 꺾으며 3연승을 거두었고, 15위였던 브레멘을 역전하여 잔류권인 15위에 올랐다. 프랑크푸르트의 잔류 여부는 베르더 브레멘과의 최종전에서 결정되게 되었다. 말 그대로 건곤일척의 대결이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아쉽게도 베르더 브레멘과의 최종전에서 0:1로 패해서 승강 플레이오프에 진출하게 되었다. 상대는 1.FC 뉘른베르크.
플레이오프 1차전을 앞두고 수비수인 마르코 루스가 '''종양 판정'''을 받는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다. 도핑 테스트 중 성장 호르몬이 과다 검출되었는데 그 원인이 약물이 아닌 신체 이상이라고 판단한 반도핑기구 측에서 검진을 진행하여 알게된 것이라고.
그리고 코메르츠방크 아레나에서 펼쳐진 1차전에서 하필이면 다른 누구도 아닌 루스가 '''자책골을 넣어버렸다.''' 경고누적으로 2차전에서는 뛸 수 없게 된 것은 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스럽게도 가치노비치의 골로 경기는 1-1 무승부로 끝이 났다. 하지만 원정 다득점 원칙 때문에 뉘른베르크가 유리한 상황.
그리고 뉘른베르크 홈에서 열린 2차전에서 전반전에는 영 안 풀리는 모습을 보이다 후반전 들어 공격을 몰아치다가 후반 21분 스페로비치가 골을 넣었고, 이 골을 무사히 지켜내며 1-0으로 승리, 합계 스코어 2-1로 극적인 잔류에 성공했다.

3.7. 2016-17 시즌


14라운드까지 5위에 랭크되어있으며 바이에른 뮌헨과 비기고 도르트문트를 잡는 등 선전하고 있다. 니코 코바치의 5백이나 3백을 중심으로 강한 전방 압박을 시도하는 전술이 괜찮은 시너지를 내는 듯. 이후 프랑크푸르트는 니코 코바치 감독과 5년 재계약을 했다. 하지만 후반기에서 승점을 13점밖에 획득하지 못하는 등 전반기의 선전을 지속하지 못해 최종 라운드에서 라이프치히와의 2-2 무승부를 끝으로 11위라는 최종 성적을 남겼다. DFB-포칼에서는 11년만에 결승에 올랐지만 도르트문트에게 2-1로 패하며 유럽대항전 진출에 실패하였다.

3.8. 2017-18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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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UTSCHER POKALSIEGER
2017-18 DFB-포칼 챔피언
'''
돌풍을 일으키며 한때나마 3위를 한 적도 있었지만 시즌이 한창 진행중이던 2018년 4월, 코바치 감독이 다음 시즌부터 바이에른 뮌헨 감독으로 부임한다는 뉴스가 나온 때를 기점으로 팀이 흔들리며 최종 순위는 8위를 기록하게 되었다. 단장인 프레디 보비치가 바이에른에 대한 불만을 강하게 표출할 정도였다.
DFB-포칼에서는 2년 연속으로 결승에 진출, 바이에른을 3-1로 털어버리고 30년만에 우승하며 유로파 리그 진출권을 획득했다.

3.9. 2018-19 시즌


'''자세한 내용은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2018-19 시즌 문서를 참조하기 바랍니다.'''

3.10. 2019-20 시즌


'''자세한 내용은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2019-20 시즌 문서를 참조하기 바랍니다.'''

3.11. 2020-21 시즌


'''자세한 내용은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2020-21 시즌 문서를 참조하기 바랍니다.'''

4. 응원가




5. 라이벌 구단


  • 공식적으로 ‘어떤 구단이 라이벌이다’라는 개념은 없지만, 아래 서술된 클럽들과 자주 연결된다.
  • 프랑크푸르트 근처 오펜바흐를 연고로 한 키커스 오펜바흐와 '마인 더비’로 엮이지만 키커스 오펜바흐가 1984년 이후 분데스리가에서 멀어진 관계로 리가에서는 만날 일이 없다. 가장 최근의 마인 더비도 2009년 DFB-포칼 1라운드 에서였고, 경기는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가 3-0으로 승리했다.
  • 지리적으로 가까이 있는 1. FSV 마인츠 05와는 그냥 같은 분데스리가에 있기 때문에 언론에서 엮는 것으로, 서포터들간의 충돌 혹은 경찰의 통제 등은 없다.

6. 여담


  • 홈 경기에서 골을 넣을 때 나오는 'Torhymne'는 우리에게도 친숙한 클래식 음악으로, 오스트리아의 음악가 프란츠 폰 주페의 ‘경기병 서곡’을 각색한 음악이다. [12][13]
  • 2018-19 시즌까지는 독일 클럽 치고 선수단 중 독일 국적을 가진 선수들의 비중이 높지 않은 편이었다. 전 감독인 니코 코바치는 크로아티아 국적이며 현 감독인 아디 휘터의 국적은 오스트리아이다. 주장인 다비드 아브라함 역시 아르헨티나 선수이며, 세르비아, 포르투갈, 프랑스, 스위스, 네덜란드, 일본, 미국 등 다양한 국적의 선수들이 소속되어 있다. 2019-20 시즌을 앞두고 임대 복귀한 선수들과 에리크 두름, 도미니크 코어, 제바스티안 로데, 케빈 트랍 등의 영입으로 독일 국적의 선수들이 많이 늘어났다.
  • F1 선수인 제바스티안 페텔이 이 팀의 팬이다. 어렸을 때 아인트라흐트의 경기를 보고 팬이 되었다고 인터뷰에서 밝혔다.
  • 구단 레전드 차범근의 영향으로 이후에도 차두리와 국가대표 수비수 출신인 심재원이 여기서 뛴 바 있다. 그리고 현재 서종민선수가 U19팀에서 뛰고있다.
  • 인기 있는 클럽인 만큼 불명예 또한 있는데, 그 열정적이라는 독일 팬덤 중에서도 압도적으로 훌리건들이 많다. 심지어 훌리건 순위 1위에 몇년째 개근상을 찍고 있다(...) 링크
  • 2019-20 시즌 종료시점까지 분데스리가 최다 660패라는 불명예도 가지고 있다.

7. 선수 명단




8. 둘러보기




[1] 스폰서 명칭이 붙기 전 이름은 '발트 슈타디온'이었다. 지난 2006 독일 월드컵에서 한국이 G조 조별예선에서 토고와 첫경기를 했던 바로 그 경기장이다.[2] 2020-21 시즌 후 사임 예정.[3] 마르코 페자이울리가 2021년 2월 12일 사임한 후 공석이다.[4] 분데스리가 출범 이전의 리그로 이 리그에서 우승한뒤 다른 지역 리그에서 우승한 팀과 붙는 방식이었다.[5] 분데스리가 출범 이전의 리그로 이 리그에서 우승한뒤 다른 지역 리그에서 우승한 팀과 붙는 방식이었다.[6] 분데스리가 출범 이전의 리그로 이 리그에서 우승한뒤 다른 지역 리그에서 우승한 팀과 붙는 방식이었다.[7] 프랑크푸르트에서 분데스리가 경기만 602경기를 출장했는데 이는 분데스리가 단일 선수 통산 최다 출장 기록이다.[8] 인천 유나이티드의 감독이었던 그 분이다. 분데스리가 사상 첫 외국인 득점왕이기도 하다.[9] 두 번 모두 공동수상[10] 프랑크푸르트의 U반 역인 Willy-Brandt-Platz역에 역대 베스트11의 인물이 랩핑되어있는데 차범근이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당당히 랩핑 되어있다. 그럴수밖에 없는게 단 한번뿐인 클럽대항전 메이저 트로피를 거머쥘때의 주전멤버였으니... 아직도 프랑크푸르트의 서포터즈들은 차범근이 오기라도 하면 엄청난 환대와 환호를 보낸다. 이는 서포터즈 뿐만 아니라 프랑크푸르트 시민이 거의 다 그렇다. 차붐의 위엄. #[11] 33라운드 강등권 경쟁자였던 쾰른과의 마지막 홈경기에서 0-2로 패한 뒤 홈팬들이 난동을 부리기도 했다.[그러나] 이후 시즌 끝까지 30경기 동안 단 22골만 넣으며 빈곤한 득점력을 보였다. 시즌 전체 득점의 35%를 4라운드까지 기록했다.[12] https://youtu.be/McV05TXzK9w[13] 2019년부터 LG 트윈스가 볼넷송으로 사용중이다.